2023년 11월 2일 목요일

은교 (Eungyo, 2012), 예술과 외설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영화. 신인 김고은의 용감한 도전.

은교 (Eungyo, 2012)

제작 : 한국

러닝타임 : 129분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감독 : 정지우

출연 : 박해일(이적요 역), 김무열(서지우 역), 김고은(한은교 역), 정만식(박사장 역)

Eungyo

▲ 은교 (Eungyo, 2012) 영화 포스터


영화 '은교'는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만 보자면 여고생과 노시인의 사랑이니, 2014년 9월 29일 시행된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아주 몹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요약된 줄거리만을 얘기하며 그렇게 단순하고 불편하게만 치부할 수는 없게 됩니다.


<은교 (Eungyo, 2012) 영화 줄거리>


교과서에 시가 실릴 정도로 명망 높은 시인 이적요(박해일 분)는 싱그러운 잎사귀를 돋아나게 할 수 없는 고목같은 나이이다. 

그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자신을 아버지 이상으로 생각하며) 집안일을 도와주는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 뿐이다.

서지우는 최근에 출판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스승의 곁을 떠나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래서 스승 이적요의 집안일을 도울 아르바이트생으로 한은교(김고은 분)라는 여고생을 데려온다.

 

자신의 집으로 통하는 사다리를 타고 들어와 자신이 햇볕을 쬐는 흔들의자에 누워있던 푸르르고 싱그러운 소녀 은교.

당돌하면서 싹싹한 은교를 만나면서 외롭고 무기력하며 고단했던 노년의 삶에 뜨거운 열정과 욕망이 솟아나기 시작하는 이적요.

이적요는 은교를 보며 젊은 자신이 되고, 은교와의 사랑을 그린 '은교'라는 소설을 은밀하고 열정적으로 쓰기 시작하는데......


영화에서 70대 노인 분장을 하기 위해 박해일 씨는 분장을 하는 데만 무려 8시간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YTN 뉴스초대석에서 "그럼 애초에 이적요와 어울리는 나이의 배우를 섭외하지 않고 박해일이라는 30대 후반의 배우를 분장시켰느냐"는 질문에 정지우 감독은 "젊은 얼굴, 젊은 몸과 나이든 몸, 나이든 얼굴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을 보면서 내 몸도 늙겠구나"라고 관객들이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방송에서 정지우 감독이 언급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적절히 편집했습니다.)


이러한 정지우 감독의 의도는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30대 후반의 박해일 씨를 분장시켰기 때문에 '은교'라는 소설을 통해 젊음을 되찾은 이적요의 모습도 담아낼 수 있었고, 자칫 사회 윤리적인 통념으로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었던 것들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대사 中>

 

☞ 한은교(김고은 분) : 여고생이 왜 남자랑 자는 줄 알아요?

☞ 서지우(김무열 분) : 좋아해서 그런 거잖아.

☞ 한은교(김고은 분) : 외로워서... 외로워서 그래요. 나도!


☞ 이적요 (박해일 분) :

나, 이적요는 늙었습니다.

늙는다는 건, 이제껏 입어본 적이 없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것이라 시인 로스케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공감하고 서로 외로움을 달래주던 두 사람이 설레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다시 외롭고 쓸쓸한 자신들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은교'의 마지막 장면.  


서지우(김우열 분)가 교통사고로 죽고 예전보다 더욱 쓸쓸한 상태가 된 이적요.

그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은교의 이야기를 눈을 감고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조용히 듣습니다.

그리고 은교가 고마움을 전하고 떠난 뒤, 옆으로 누운 이적요의 감은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잘가라. 은교야!"


평점 : 9점 (예술과 외설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영화. 하지만 이제는 아청법에 의해 유죄가 될 수 밖에 없는 영화. 신인 김고은은 쉽지 않은 장면들을 용감하게 잘 촬영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찾아왔던 푸르름과 욕망은 다시금 쓸쓸함과 고독만을 남기고 그렇게 사라져 갑니다.

이 영화가 외설이 아니라 외롭고 힘든 하루를 살고 있는 이들의 현실적 교감과 사랑을 담은 잔잔한 예술 영화임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영화 포스터는 제법 상업적인 성격으로 제작되었고, 2014년 시행된 아청법의 기준으로 보면 이 영화는 유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2015년 4월 12일 작성 (티스토리 블로그)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라이브 테러 (A Common Man, 2015) 반전적인 요소를 잘 살려 제대로 연출되었다면 어느 정도는 볼만했을 이야기. (스포일러 일부 포함)

라이브 테러 (A Common Man, 2015)  제작 : 미국, 스리랑카 러닝타임 : 86분 각본, 감독 : 찬드란 루트냄 원작 : 니라이 판데이 (ORIGINAL STORY NEERAJ PANDEY) BASED ON ORIGINAL FILM ...